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문단 편집) === 체르노빌 다이버 === 현장에 도착한 기술진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사고 첫날 화재 진압을 위해 뿌린 물이었다. 기술진 일부에서 사고 직후 녹아내리는 노심과 방사성 물질이 원전 지하에 고인 냉각수 및 소화수와 만날 경우 수천도의 고열의 물이 한순간에 증발하며 증기폭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었다. 이 예측이 현실화될 경우 주변 원자로 3기까지 훼손시킬 것이고 결국 광범위한 오염이 일어나 [[멸망|수습이고 뭐고 없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었다. 현장을 지휘하던 쿠르차토프 연구소 부소장 [[발레리 레가소프]]는 예브게니 벨리호프[* 1989-92 쿠르차토프 연구소 소장, 1992-2015 회장]를 이 주장의 근원지로 지목하면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사람"이라고 무시했지만 벨리호프는 국방부 등 정치적 연줄이 있는 인물로 고르바초프와 직통으로 전화로 보고할 수 있는 거물이었고 당국 입장에서도 이미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된 사태를 당장 눈 앞에 두고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둘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사고 5일째 되는 날, 발레리 레가소프의 명령에 의해 펌프 기사 알렉세이 아나넨코(Олексій М. Ананенко, 1959년생. 당시 27세), 발레리 베스파로프(Валерій О. Беспалов, 1957년생. 당시 29세), 보리스 바라노프(Борис О. Баранов, 1940년생~2005년 사망. 당시 46세)가 지하수로 흘러들어가는 방사능을 막기 위해 램프를 들고 '''직접 지하의 방사능에 오염된 물(냉각수) 속으로 들어가 펌프를 가동시켜''' 지하수를 보호했다. 문제의 노심 바로 밑이기도 해서 얼마나 많은 방사선이 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런 오염수가 얼마나 들어찼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대단히 위험한 임무였다. 최악의 경우 희생자들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될 지도 모르는 임무였지만 세 사람은 이 일이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하겠노라고 했다.[* 이 사람들이 한 일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인디게임이 [[2020년]] 9월 스팀에 업로드되었다. 게임 이름은 [[Liquidators]].] '''이들은 후일 언론에 의해 체르노빌 다이버로 불렸다.'''[* [[우크라이나]]에서는 'Богатирі(Bogatyri, [[보가트리]])', [[영어권]]에서는 'Suicide Squad(자살특공대)'로도 불렸다. 자살에 가까울 정도로 위험한 임무에 뛰어들었다는 뜻이었지만 이는 해외 언론에 이들이 실제로 전원 사망했다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는 데 기여했다.] 이들이 [[스페츠나츠]] 출신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사능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떠돌아다니지만 3명 모두 순수한 엔지니어였으며 가장 연장자였던 바라노프가 [[2005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을 뿐 나머지 2명인 아나넨코, 베스파로프는 현재까지 생존해 있다.[* 아나넨코는 사고 이후에도 원자력 업계에서 일하면서 안전대책 강화에 힘을 쏟았다. 2001~2010년에 우크라이나 원자력 규제 위원회에서 일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다가 2018년에 완전히 은퇴했다. 베스파로프는 1992년에 아예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로 돌아와 업무를 계속했다.] 체르노빌 다이버라는 별칭은 당시 동구권 언론에 의해 '지하에 가득 찬 방사능 오염수 속으로 목숨걸고 들어갔다' 정도로만 알려지는 바람에 붙은 별명이었고 [[2010년대]] 초반까지는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2006년]]에 방영된 [[BBC]] 다큐에서 선보인 재연조차 두꺼운 잠수복을 입고 어둡고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일 정도였다. 제대로 된 이야기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2010년대 중반에 와서였다. 당사자들은 [[카더라 통신|제대로 검증된 정보도 없이]] 이러한 별명을 퍼뜨려 그렇게 불려진 것을 탐탁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무에 참여했던 아나넨코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 3명은 3m 깊이의 발전소 지하에 들어가서 4GТ21(4ГТ-21)과 4GТ22(4ГТ-22)라는 이름의 밸브 2개를 열어야 했고 그것을 위해서 방사성 물이 들어찬 001번 복도를 지나가야 했다. 그들은 가슴과 발목 언저리에 X선 측정기를 착용하고 밸브의 핸들이 폭발로 날아갔을 것을 대비해 가스 압력식 열쇠도 준비하여[* 다행히 핸들은 무사해서 손으로 열었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갔다. 바닥에 깔린 큰 직경의 파이프를 따라가서 밸브를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폭발로 밸브 명판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예상했지만, 다행히 밸브에 명판이 남아 있어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들어갔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방사선량도 생각보다 낮았고 물도 무릎 정도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때문에 물 속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잠수 장비를 메고 사람 키 이상의 깊고 어두운 오염수 속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와전된 이야기'''다. 이들이 [[스페츠나츠]] 출신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던 이유도 와전된 이야기 속 임무는 고도로 훈련받은 인원이 아니면 시도도 못 해 볼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론적일 뿐이지 상황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목숨을 걸었고 매우 위험한 일이었던 건 사실이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 대중적으로 연상되는 고방사선 구간이 없진 않았는데 그 구간에 진입하던 중 앞서가던 바라노프가 전방에 들이밀던 측정기에서 범위를 넘어서는 값이 나타나자 일행 모두 그 지역을 전력질주해서 통과하였다고 한다. 도중에 호기심을 못 이기고 뒤를 돌아보니 위쪽에 있을 중앙 홀로 연결된 구멍을 통해 지하 바닥으로 흘러내린 검은색의 거대한 원뿔 형태를 이루고 있던 무언가가 보였고 그와 동시에 당시 대량의 방사선 피폭자들이 증언하던 금속 맛이 입 안에서 느껴졌다고 했다. 이것은 후술할 '''코끼리 발'''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원자로의 잔해와 콘크리트 잔해가 섞여서 마그마처럼 흘러내린 혼합물이었다. 이들 3명의 헌신적인 사고 수습 활약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8년]] [[4월 25일]]에 3급 용맹훈장을 수여하었다.[[https://www.ukrinform.ru/rubric-society/2449795-prezident-vrucil-nagrady-geroamlikvidatoram-i-rabotnikam-caes.html|#]] 이어 드라마 [[체르노빌(드라마)|체르노빌]]을 통해 이들의 활약이 재조명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상훈의 격을 높여 [[2019년]] [[6월 27일]]에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와 함께 [[우크라이나]] 최고의 훈장인 금성훈장을 수여하였다.[[https://www.president.gov.ua/documents/4682019-27817|#]] 이들 전원은 다행히 임무 수행 후에도 살아남았지만 이외에도 수많은 소련의 군인들이 [[살신성인|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몸바쳐 체르노빌에서의 오염을 막으려다가 희생됐다.]] 이들은 인민을 살렸고 [[소련]]을 살렸으며 [[동유럽]]을 살렸다. 이후 [[소련 붕괴|소련이 붕괴]]되고 여러 나라로 분리되긴 했지만 이 후폭풍이 [[유럽]]에서 지금도 심각한 문제인 걸 보면 이들은 소련뿐 아니라 가히 '''유럽 전역'''을 살린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